<스위니 토드>
피가 톱니바퀴를 타고 흘러 하수구로 빠져가는 인트로를 보면서, 혹시 이것이 앞으로 펼쳐질 영화에 대한 경고인가 생각했다. 팀 버튼의 영화가 잔혹한 동화라고 표현되기는 했어도 피는 많이 나오지 않았는데, [스위니 토드]는 중반을 넘어가면 피가 낭자하면서 후반에는 슬래셔 무비 못지않은 피와 살육을 보여준다. 인트로의 피는 후반부의 피칠갑에 대한 언급으로 보인다.
그 다음으로 눈에 띈 건 뮤지컬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기묘하게 평면적인 런던이 등장하고, 한 척의 배가 안개로 공간을 지운 배경에서 등장하면 안소니(제이미 캠벨 보워)가 노래를 부른다. 이건 ‘팀 버튼이 [스위니 토드]를 뮤지컬로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해 한 관객에게 던지는 대답 같다. 그리고 안소니의 노래에 스위니 토드(조니 뎁)가 끼어들어 같이 노래를 부르는데 이건 ‘조니 뎁이 어떻게 노래를 부를까’에 대한 대답 같다.
영화는 팀 버튼 버전의 [스위니 토드]가 어떻다는 걸, 그리고 조니 뎁이 노래도 괜찮게 한다는 걸 보여준 다음에는 영화를 본격적으로 끌고 간다. 영화는 전체에 걸쳐, 특히 노래하는 동안은, 첫 노래에서 보여준 클로즈업에 의존해 노래를 끌고 가는 스타일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뮤지컬은 무대라는 공간에서 이뤄지는 예술이기 때문에 공간에 의존하는 예술을 어떻게 영상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영화로 변환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뮤지컬 영화를 만들 때는 필요하다. 뮤지컬 영화가 성행했던 과거에는 나름대로의 해답이 있었지만 일정 시간 동안 역사가 끊겼다가 다시 부활한 최근에는 감독의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문제인 듯 하다. 팀 버튼은 공간감을 지우는 방법을 택했다. 배경을 지우거나 무시하면서 공간감을 없애고, 배우의 움직임 보다는 표정 연기에 노래와 감정 표현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는데, 다행히 조니 뎁과 헬레나 본햄 카터의 좋은 표정 연기(표정 뿐 아니라 두 사람은 얼굴 자체가 예술이다)가 영화를 훌륭하게 이끌고 간다. 때문에 영화는 쇼트와 리버스 쇼트가 자주 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쇼트가 상당히 많아졌지만 그렇다고 MTV 뮤직비디오 스타일은 아닌, 오히려 독특하고 강렬한 스타일의 그리고 영화적인 표현에 상당히 의존하는 뮤지컬로 거듭났다. 때문에 스위니 토드의 이발소와 러빗 부인의 파이 가게, 지하실, 터핀 판사의 집 정도의 좁은 공간만 오가며 벌어지는 뮤지컬인데도 영화가 전혀 작은 뮤지컬 영화로 보이지 않으며, 동시에 독특한 세트와 미술이 만들어 낸 음침한 시대배경의 분위기도 잘 살아났다. 뮤지컬 영화에서는 노래의 가사를 통해 이야기가 전달되기 때문에 영화로 변환될 경우 등장하는 플래시백은 대부분 굳이 노래로 전달되는 이야기를 화면으로까지 보여주는 사족처럼 느껴지는데, [스위니 토드]의 플래쉬백은 영화의 독특한 스타일 탓에 작위적이지 않게 느껴진다.
이런 스타일을 팀 버튼 감독이 사용한 이유는 뮤지컬을 알고 들어온 관객에게는 새로운 팀 버튼 버전의 뮤지컬을 보여주고 싶고, 뮤지컬을 모르고 들어온 관객에게는 팀 버튼의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인 듯 하다. 원래 뮤지컬을 보질 못해서 어떤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영화 [스위니 토드]는 단순한 줄거리의 복수극이고, 개인의 복수가 광기에 이르렀을 때 어떻게 파멸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순한 교훈극이기도 하다. 팀 버튼의 영화는 늘 텍스트가 복잡할지언정 이야기 자체는 단순했고, [스위니 토드]도 이런 단순함에 맞춰 원작의 이야기와 노래와 인물 성격들을 재단한 것 같다. 그리고 덧붙여진 피 칠갑을 통해서 팀 버튼이 새로운 스타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보여줬다. 결과적으로 팀 버튼이 자신의 개성을 밀어붙여서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팀 버튼 식 [스위니 토드]가 되었다.
내가 이 뮤지컬에서 아는 노래는 오리지널로 안 건 아니고, [저지 걸]을 보면서 들었던 [God That's Good!] 한 곡인데, 팀 버튼 버전은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았다. 오리지널을 몰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벤 에플렉과 리브 타일러와 Raquel Castro가 부른 버전이 더 좋았다.
좋은 친구와 여자 친구를 둔 팀 버튼이 부러웠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우연치 않게 면도를 하지 않고 극장에 갔다가 영화를 봤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덧글
Reuentahl 2008/01/20 06:58 # 답글
아무생각없이 팀버튼 영화라고 보러갔다가 -_- 갸아악;해버렸드랬죠.
우주괴물 2008/01/20 09:02 # 답글
일단 영화를 보구나서 고기를 별로 먹고 싶어지지 않더군요. ^^;
鷄르베로스 2008/01/20 10:28 # 답글
그전부터 벼르고 있던 영화였는데 영화평을 보고 난 후 더더욱 좌불안석입니다(들썩들썩) 아 ... 보러가야 하는데(요즘은 스포일러 자체의 개념이 유명무실해진 것 같지만) 대략적인 서술만으로도 영화를 보고싶게 만드는 힘
멋진 영화평 잘보고 갑니다.
콜린 2008/01/20 21:50 # 답글
아 감사합니다. 이 글이 밸리 같은데 올라갔었나요? 오늘 방문자수가 엄청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