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의 기술記述 독립영화 리뷰

[파산의 기술記述]




전철과 사람이 바쁘게 오가는 지하철역에 한 이주노동자가 서있다. 한동안 망설이던 그는 지하철이 들어오는 순간 선로로 뛰어든다. 다큐멘터리 [파산의 기술記述]은 지하철의 폐쇄회로 카메라가 촬영한 충격적인 순간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특이한 건 영화가 상황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충격적인 장면이지만 영화는 관객에게 분노나 슬픔의 감정을 강조하지 않으며 오히려 아무 감정 없이 화면을 분할하고 자살한 사람과 그 주변을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의 컷을 배열해 사람이 철로에 뛰어든다는 순간의 비극성만을 잡아낸다. [파산의 기술]을 설명하는 키워드라면 이런 차가운 감정이다.


영화를 설명하는 두 번째 키워드는 ‘충돌’이다. 차가운 감정을 이미지의 충돌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지하철 장면 이후 영화는 도시의 풍경으로 시선을 옮긴다. 바쁜 사람들은 피곤한 얼굴로 일을 하고 그 위로 라디오 아나운서의 말이 덧입혀진다. 활기차게 하루를 보내라는 라디오의 아나운서의 매끈한 목소리는 사람들의 무기력한 표정과 충돌해 덧없이 들린다. 취직을 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태도로 자신을 개발하라는 강사의 강의 사이로 정신없는 구직자들의 모습이 오간다. 취업박람회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 정장을 입고 면접을 기다리는 사람들, 완전히 집중한 표정으로 정보를 확인하는 얼굴들, 각각의 이미지를 차가운 감정과 감독의 지적인 선택만으로 충돌시킨 영화는 점점 강하게 관객을 흔든다.

영화는 ‘거대 자본주의에서 파산은 일종의 함정’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파산은 시스템이 만들어낸 현상인데 개개인은 이걸 내재화해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영화는 파산, 특히 카드빚으로 파산에 이른 사람들의 인터뷰를 시작한다. 카드 회사의 과장이라는 사람은 카드 회사들이 어떻게 개인 대출을 중점 사업으로 두게 됐는지를 설명한다. IMF 이후 대기업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기업 대출 보다는 안전한 수익이 보장되는 개인 대출 시장에 중점을 두게 되고 각 회사들이 출혈을 하면서까지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카드빚을 진 사람들의 인터뷰 사이로 국제금융기구회의에서 회원들이 와인 잔을 들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면이 삽입되면서 누가 자본주의를 조종하고 있으며 누가 그 피해를 입었는지를 설명하는 영화를 지켜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건 영화에도 나오는 말인데, “우리는 모두 속은 것일까?”

영화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의 대통령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들은 나라가 더 잘살기 위해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로 일하러 떠나는 간호사들, 건설 노동자들을 칭찬하는 박정희, 십분 일하고 이십분 늦게 퇴근하고 점심시간이 아까워 삼십분만 밥을 먹고 나머지 삼십분에는 일한다는 공장 직원을 칭찬하는 공익 영화들, 영화는 잠시 이들을 칭찬하는 소리를 지우고 그들의 표정에 집중한 후 감독의 나레이션으로 묻는다, 저 표정이 정말이었을까. 가족과 헤어져 독일로 중동으로 떠나는 노동자의 잠시 떨리던 표정들 카메라 앞에서 굳은 그들의 얼굴은, 지금의 파산한 사람들의 표정과 다를 바가 아니다. 변한 것은 없다. 변한 것은 ‘완전 고용의 형태에서 노동자를 최대한으로 착취하던 구조에서 비고용에서 저임금 착취의 구조로 변화한 사회’ 뿐이다. 영화는 비정규직으로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과 카드 빚에 허덕이는 사람 두 종류의 사람을 인터뷰한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주로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10년을 일해도 정규직으로 채용될 희망이 없지만, 그래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열심히 일하면 해고되더라도 다시 취직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그것이 행복일까? 카드 빚을 진 사람들은 카드는 나쁜 것이 아니고 자신이 카드를 잘못 사용해서 그런 것이므로 꼭 빚을 갚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카드 회사는 아무 잘못이 없는 걸까? 빚 때문에 인생이 엉망이 된 남자는 방송에 나와 울먹인다.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열심히 살아서 빚도 꼭 갚고 아들도 보고 싶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우리는 너무 빨리 패배했다. 우리는 너무 빨리 승리에 도취해서 패배했다. 영화는 386콘서트를 보여준다. 가수들이 노래하면 386들은 환호한다, 감동하고 감격한, 신파의 표정이 담긴 그들의 얼굴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탄핵이 무효 결정 나면서 우리의 승리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카메라에 담긴다. 영화는 그때를 되짚는다. 한때 적과 동지의 구분이 분명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은 적이 사라진 것이라고 믿었지만, 단지 적과 동지의 구분이 모호해졌을 뿐이다. 오히려 적은 더 거대하다. 피아가 구분되지 않는 시대, 더 교묘하게 우리를 속이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거대 자본주의와 싸워야 할까. 영화의 마지막, 노동자의 투쟁 현장 누군가의 등에 써진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내 목숨을 달라하면 너의 가슴에 칼을 꽂겠다.’

 



덧글

  • 콜린 2007/08/10 22:40 # 답글

    아 제가 잘못 썼네요. 수정하겠습니다.
  • 콜린 2007/08/11 11:58 # 답글

    그리고보니 진짜 무식한 실수를 저질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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